블록체인이 미래다 (상) 블록체인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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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하도 시끄러워서 알겠는데 블록체인은 대체 뭔가요?”
“블록체인이 지구를 혁파한다던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죠?”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 나섰는데 블록체인은 괜찮나요?”
“비트코인 막으면서 블록체인 기술은 발전시키겠다는 건 자전거는 타지만 페달은 밟지 않겠다는 거 아닌가요?”
“이제는 블록체인 시대네요.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빙산의 일부라던데요.”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블록체인에 관한 코멘트 중 일부다. 2017년 불어닥친 비트코인 열풍이 그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논의는 미흡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블록체인이란 무엇이고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스토리로 구성했다(이 글은 상.하편으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블록체인 도대체 누구냐 넌?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는 오대수 씨(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을 패러디했다). 그는 무려 1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흘러버린 세월이 억울한 오씨는 `인생 한 방`을 노리고 카지노에 간다. 세상은 베팅 잘 해서 많이 따는 놈이 다 가져가는 도박판이라고 생각하던 오씨는 어쩌면 자신에게도 운이 찾아올 때가 됐다고 믿는다. 삶이 팍팍해서인지 한국인들은 특히 베팅에 강하다. 오씨도 그렇다.
오대수 씨는 포커게임을 하려고 한다. 테이블에는 오씨를 포함해 5명이 앉았다. 그중 타짜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조폭처럼 보이는 남자도 있다. 누가 어떤 사기를 치는지 알 수 없고, 알 방법도 없다. 하우스가 잘 관리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딜러가 패를 돌린다. 딜러는 카드를 나눠주면서 꽤 많은 수수료를 받아간다.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억울한 기분이다.
카지노에서 오씨가 돈을 딸 확률은 이론적으로는 포커 참가자 수에 반비례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돈을 벌 확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왜? 오대수 씨는 호구니까. 주위엔 사기꾼이 득시글하니까.
돈을 거의 다 잃은 오대수 씨는 남은 돈을 들고 옆 카지노로 간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간판이 붙어 있다. “블록체인? 카지노 이름 한 번 특이하네.”
오씨는 일단 칩부터 바꾼다. 칩에는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이곳이 다른 카지노와 다른 점은 카드를 돌리는 딜러가 없다는 것이다. 수수료를 뜯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았지만 오대수 씨는 궁금했다. 도대체 게임을 어떻게 하지?
하지만 게임이 시작되자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다들 각자 알아서 패를 내고 게임을 하면 됐으니까. 오씨는 포커판에 굳이 딜러가 필요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오대수 씨가 카드를 낸다. 테이블에 앉은 다른 네 명도 카드를 낸다. 그 내역을 장부에 적는다. 그렇게 10분 동안 적은 장부를 하나의 블록에 묶어 인원별로 복사해 나눠 갖는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각자 갖고 있는 블록들이 쌓인다. 그걸 묶은 것을 사람들은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다.

게임이 진행되는데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타짜가 일어나 소리친다. “다들 스톱, 어이, 거기 오대수 씨, 지금 밑장 빼기냐? 당신이 사기쳤다는데 손모가지 하나를 건다. 넌 뭘 걸래?”
오씨는 억울하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다섯 명이 일제히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장부를 꺼내 비교해본다. 카드 한 장이 비었다. 범인은 오대수 씨가 아니라 타짜다. 이제 타짜를 제거하고 다른 네 명이서 카드를 돌리기 시작한다. 과정이 투명해지자 오대수 씨가 돈을 딸 확률은 확실히 높아졌고, 사기당할 확률은 현저히 줄었다. 오씨는 즐겁게 포커를 치면서 블록체인의 위력을 실감한다. 오늘은 왠지 대박을 터뜨릴 것만 같다.

◆블록체인은 한 마디로 `직거래`
블록체인은 `직거래`다. 중개자를 없애고 공급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시켜주는 기술이다. 수수료를 과도하게 떼어가는 은행, 품질이 떨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 우리가 낸 세금을 낭비하는 정부를 대체하고 직거래를 가능하게 해줄 기술이다. `비즈니스 블록체인`의 저자 윌리엄 무가야는 “그동안 우리가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한 나머지 그들이 믿음을 저버리는 경우에도 관용을 베풀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중개자 역할을 대신할까? 컴퓨터다. 이를 `스마트 컨트랙트`라고 한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있으면 밑장 빼기는 불가능하다. 계모임에서 계주가 먹고 튈까봐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 컨트랙트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본다.
블록체인에는 중앙서버가 없다. 장부를 중앙서버에 보관하지 않는다. 대신 참여자들의 수만큼 똑같은 장부를 만들어 나눠 갖는다. 디지털에서 어차피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은 의미 없다. 개개인의 컴퓨터가 모두 서버 역할을 한다.

그 전까지 보안이 어떻게 하면 해커가 중앙서버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을까 하는 방화벽 개념이었다면 블록체인은 역발상이다. 데이터를 암호화해 지구촌 80억명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준다. 80억개를 다 바꾸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슈퍼컴퓨터 중 절반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혹시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라면 해킹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블록체인의 시초인 비트코인이 탄생한 2009년 이래 아직까지 비트코인은 단 한번도 해킹당하지 않았다. 해킹을 시도한 해커조차 그 보안성에 감탄하며 두 손 들었다(비트코인은 해킹당하지 않았지만 비트코인 거래소는 종종 해킹당한다. 거래소는 중앙서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보안이 거의 완벽하다는 장점 외에 블록체인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생산성이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신소재 등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데 중앙처리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분산 처리에 효과적이기에 다양한 산업에서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
특히 블록체인이 인공지능과 결합하면 막강해진다. 바둑의 `고`를 떼어내고 장기, 체스 등도 마스터한 구글의 `알파 제로`에서 보듯 인공지능은 다양한 유형의 많은 데이터가 주어질수록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다. 이때 블록체인은 인공지능에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데이터 저장소 역할을 해준다.
반대로 블록체인 기술의 한계 극복은 인공지능이 도와줄 수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에 인공지능의 머신러닝을 적용하면 블록체인은 스스로 더 똑똑해진다. 블록체인이 알아서 상황에 맞는 `똑똑한 계약`을 학습해 제안하고 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인공지능에 고품질 데이터를 제공하고, 인공지능은 블록체인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준다.

◆블록체인의 막강 기술 `스마트 컨트랙트`
블록체인이 세상을 뒤흔들 혁신적인 기술로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 컨트랙트` 덕분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모든 계약의 중개자 역할을 대신한다. 딜러, 중개, 보증, 공증, 에스크로, 리스크 헤지 등 A와 B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모든 기능을 블록체인에선 스마트 컨트랙트가 대체한다.
스마트 컨트랙트란 한 마디로 `자동화된 실행 규약`이다. 오대수 씨와 타짜가 단둘이 게임을 하게 된 상황을 가정해 보자. 두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하기에 사전 계약서를 작성할 것이다. “만약 오대수 씨가 이기면 타짜는 가진 돈을 다 내놓고, 타짜가 이기면 오씨는 손모가지를 내놓는다.” 이런 계약을 작성했다면 계약대로 집행되는지 확인해줄 중재자가 필요한데 현실에서라면 그런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판이 커지는 만큼 수수료를 두둑히 떼어가려 할 것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컴퓨터엔 자비가 없다. 계약이 컴퓨터 코드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지정된 조건이 완료되면 무조건 실행된다. 스마트 컨트랙트하에서는 게임을 하는 내내 오씨는 손목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원리는 1994년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닉 재보가 처음 제안했다. 모든 참여자가 계약 조건에 동의하고, 자동적으로 실행될 것을 신뢰할 수 있으며, 오류나 조작 위험이 거의 없는 계약의 실행을 설계한 것이다. 당시엔 기술 장벽으로 인해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다가 블록체인에 도입되며 빛을 발하고 있다.
최초의 스마트 컨트랙트는 `비트코인 스크립트`다. “보유한 비트코인의 잔액이 정확하고, 보낸 사람의 서명이 정확하면 거래를 정상으로 간주한다”는 계약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스크립트는 오직 거래 내역과 잔고만 저장한다는 한계가 있다.
2014년 탄생한 이더리움은 이 한계를 극복하고 스마트 컨트랙트에 다양한 상태값을 저장한다. 이더리움이 스마트 컨트랙트를 강화한 덕분에 블록체인은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블록체인을 슈퍼컴퓨터에 준하는 강력한 컴퓨팅 환경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 바로 스마트 컨트랙트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차이
올해는 나카모토 사토시가 2008년 비트코인에 관한 논문(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https://bitcoin.org/bitcoin.pdf)을 통해 블록체인의 개념을 정립한지 10년째 되는 해다. 지난 10년 동안 블록체인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해왔다. 블록체인의 현재까지 발전 단계를 단순화하면 2009년 탄생한 비트코인은 1세대, 2014년 나온 이더리움은 2세대로 볼 수 있다(최근 암호화폐 시가총액 2위로 급부상한 `리플`은 기술발전보다는 블록체인 기술과 기존 중앙집권형 시스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몸값이 오른 경우다).
비트코인에 비해 이더리움은 블록에 담기는 데이터의 양과 질, 처리방식 면에서 퀀텀 점프했다. 비트코인의 블록에는 거래 내역과 잔고만 저장된다. 한 블록의 크기는 1MB로 제한되어 있고, 10분에 한 번씩 블록을 체인으로 묶어 저장한다. `작업 증명(Proof of Work)` 알고리즘을 채택해 참가자 수와 작업량에 따라 블록을 생성하는데 에너지 소모량이 많고 속도가 느리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금융거래 수단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많은 구조다.
반면 이더리움은 거래 내역 외에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와 실행 이력도 기록한다. 비트코인이 거래 내역이라는 하나의 스마트 컨트랙트(비트코인 스크립트)만 실행하는 반면, 이더리움은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 자체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다. 한 블록의 크기는 무제한이고, 10초에 한 번씩 저장한다. 비트코인과 달리 `지분 증명(Proof of Stake)` 방식을 채택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였는데 이는 지분(통화)을 많이 소유한 참가자를 우대하는 방식이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시스템 신뢰성을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더리움을 만든 러시아 출신 캐나다 해커 비탈릭 부테린은 자신의 목표를 “이더리움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위스에 이더리움 재단을 세우고 누구나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소스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왜 암호화폐로 시작했나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통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구체적으로는 비트코인 가격의 놀라운 급등이 시선을 잡아끌었고, 이것이 블록체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비트코인은 특히 한국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난 12월 6일 블룸버그는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21%가 원화로 결제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 유독 한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비트코인 열풍에 대한 분석이 쏟아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출구 없는 헬조선이 만든 한탕주의” “한국인 특유의 동조심리와 집단주의적 성향”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평창 롱패딩 줄서기에서 보듯 대도시에 모여 살며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우리는 소외되는 것을 싫어하고 이것이 비트코인 광풍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당장 구글에서 `bitcoin`을 검색하면 2억9900만개의 검색 결과가 나오는데 이는 `donald trump`를 검색한 결과인 2억3200만개를 능가하는 수치다.
세상에 없던 것이 대중화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거품이 필요하다.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 신드롬과 함께 몸값을 올렸고,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강남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이면에는 맹목적인 투기 수요가 있었고, 경리단길, 망리단길 등 골목길이 뜨는 것은 그쪽으로 사람과 돈이 쏠리기 때문이다. 또 스타벅스가 유독 한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데에는 순식간에 일어난 커피 붐이 한몫했다.
거품경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대한 버블이 지나간 이후엔 늘 세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한 번 쏘아올려진 버블이라는 엔트로피는 절대 역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버블이 꺼질 때쯤 엔트로피는 탈출구를 찾는데 그 탈출구의 바깥에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은 중상주의 시대를 끝내고 자본주의 시대를 열었고,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은 프랑스대혁명을 촉발했으며, 19세기 말 미국의 골드러시는 미국 서부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자산 거품은 무기력한 `잃어버린 10년` 세대 출현의 원인이 됐고, 20세기말 닷컴 버블은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연결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버블 현상을 우려하면서도 비트코인이 상징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인터넷에 버금가는 혹은 인터넷을 능가하는 세상을 바꿀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야후 전 부회장 살림 이스마엘은 “블록체인은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파괴적”이라고 말했고, 오버스톡 CEO 패트릭 M 번은 “향후 10년 동안 블록체인은 인터넷이 했던 것만큼 심각하게 수십 개의 산업을 파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는 “과거 30년이 인터넷 시대였다면 향후 30년은 블록체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고, 인호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블록체인은 유용성, 확장성, 보안성이 검증된 만큼 앞으로 모든 데이터와 자산이 안전하게 거래되는 거대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한 첫 번째 시제품”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대중화의 출발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새로운 개념의 `화폐`인 것은 화폐(돈)야말로 우리에게 피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은 인체의 혈액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고 순환되어야 인간이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은 돈이 공급되고 유통되어야 돌아간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통해 일단 세상에 혈액을 공급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돈(자본)의 공급과 유통 중 적어도 한 가지를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혁신적이라고 일컬어진 기술은 대부분 자본의 유통만 바꿨다.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꾼 인터넷마저도 그랬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바꾸려 한다. 지금까지 돈을 생산하는 주체는 국가가 보증하는 중앙은행 혹은 (미국의 경우) 국가의 입김하에 놓인 연방준비은행인데 블록체인은 이런 제도를 대체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사실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이 탄생한 것은 300년이 채 되지 않을 만큼 짧다. 우리가 화폐라 부르는 종이지폐나 동전 역시 결국 따지고 보면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국가가 인증해준 가상화폐일 뿐이다. 언제 대체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 보급 초창기에는 간단한 이메일 전송만으로도 세상이 떠들썩했다. 지금 인터넷이 모든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침투해 인터넷 없이는 더 이상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을 보면 그때 호들갑이 머쓱해질 정도다. 블록체인 초기 단계인 지금, 비트코인이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이 가져올 거대한 변화다.

◆누구나 코인을 만들 수 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다. 모든 참가자들이 N분의 1만큼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진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처럼 혁신적인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지만 사실 이런 코인을 오대수 씨라고 못 만들라는 법은 없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게 블록체인이다.
“까짓거 나도 암호화폐 하나 만들어서 세상을 바꿔봐?” 오대수 씨 같은 사람들이 늘면서 세상에는 벌써 1300종 이상의 암호화폐가 나와 있다. 이더리움은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암호화폐를 쉽게 발급할 수 있는 플랫폼 기능을 제공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토큰만 무려 1만2000종 이상이다.
암호화폐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투자자에게 비트코인이나 이더 등 기존의 암호화폐를 지급하고, 새로운 암호화폐를 발급해 제공하면 끝이다. 이 과정을 ICO(Initial Coin Offering)라고 한다.
ICO는 비상장 기업이 주식을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IPO(Initial Public Offering)를 떠올리게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르다. ICO는 투자은행과 증권회사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투자자에게 배당이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며, 공시 의무도 없고, 기업 실적을 공개할 필요도 없다. 투자자는 지분이나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한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전혀 없는 셈이다. ICO는 IPO보다는 차라리 크라우드펀딩에 가깝다. 그래서 대부분의 ICO는 코인을 `판매`한다고 하지 않고 `기부(Contribution)`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더리움 플랫폼 기반 암호화폐는 `ERC-20 토큰`(ERC-20은 Ethereum Request for Comment 20의 약자로 이더리움 네트워크 표준을 의미)이라 불리는데 누구나 자기 토큰을 만들고 이더리움 전자지갑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다. 까다로운 거래 검증(채굴) 과정을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대신해주기에 복잡한 프로그래밍이 필요 없다.
2017년 수많은 암호화폐들 중 히트상품은 단연 비트코인이지만 상승률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이더리움이 비트코인보다 압도적으로 높다(이더리움 9000%, 비트코인 1700%). 그 이유는 JP모건, 크레디트 스위스, ING, MS,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작년 초 이더리움 기반 프라이빗 블록체인 연구모임 EEA(Ethereum Enterprise Alliance)를 발족하면서 이더리움이 블록체인의 표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더리움은 플랫폼을 공개한 덕분에 블록체인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더리움 플랫폼 기반의 앱을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분산 애플리케이션)`라 부르는데 DAPP가 성공을 거두면 DAPP가 발행한 토큰의 가치가 상승하고 투자자들은 수익을 얻는다. 퀀텀(QTUM), 이오스(EOS) 등이 DAPP에서 성공한 토큰들이다. 토큰의 가치가 오르면 당연히 이더리움 플랫폼의 가치도 올라간다.

최근엔 DAPP로 만든 최초의 게임 `크립토 키티`가 대박을 터뜨리며 블록체인 게임이 또 다른 블루오션으로 등장했다. `크립토 키티`는 `포켓몬 카드`처럼 고양이 캐릭터를 모으는 게임이다. 출시 10일 만에 무려 6700만달러(7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는데 희귀한 고양이의 경우 무려 18만달러(2억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한다. 인터넷의 보급에도 게임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블록체인 게임의 등장은 고무적이다.
코인이든 토큰이든 ICO는 투자자를 필요로 한다. 암호화폐에 돈이 몰리면서 2017년 ICO 시장은 대폭발해 거래 규모가 벤처캐피털의 투자 규모를 넘어섰다. 블록체인 ID 플랫폼인 시빅(Civic)을 설립한 비니 링햄 CEO는 “토큰이 세계를 먹어치우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직 코인 발행과 투자에 대해 법률적 근거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범죄 자금이 들어가도 제재할 방법이 없고, 자금 출처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할 주체도 없으며, 투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그래서 이더리움을 공동창업한 찰스 호스킨슨마저 현재의 ICO 열풍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는 “ICO 기반의 자금조달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ICO가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돈을 빨아들이면서 각국은 일단 ICO에 철퇴를 가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연방증권법으로 ICO 시장을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한국도 ICO 전면 금지를 선언했다. 중국은 이미 ICO 시장을 폐쇄했고, 러시아는 개인투자자의 ICO를 제한했다.

하지만 투기 열풍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법적 요건이 만들어지고 나면, ICO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ICO는 블록체인의 분산 효과를 극대화할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이를 가장 쉽고 편리하게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이 ICO다. 문제의 해결책은 가장 단순한 길에 있다는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상기해보면 ICO는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언젠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또 국경이 따로 없는 블록체인 특성상 ICO 수요는 풍선효과처럼 금지되지 않는 국가로 몰려갈 텐데 돈이 한 국가로 쏠리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국가는 없을 것이라는 점도 ICO 재부상을 점치는 이유다.
특히 스위스는 블록체인에 무척 개방적이어서 ICO에 관한 법적 구조를 이미 마련해놓고 있다. 입주기업 세제 혜택과 행정 지원까지 풍부해 이더리움 재단을 비롯해 자포(Xapo), 셰이프시프트(ShapeShift), 모네타스(Monetas), 싱귤러 DTV 등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취리히에 둥지를 틀었고, ICO를 하려는 기업들도 몰려가고 있다.
또 세계 최초로 국가에 의한 ICO를 추진하는 에스토니아는 자체 암호화폐 `에스트코인(Estcoin)`을 발행해 조달 자금을 벤처캐피털 펀드처럼 전자시민권에 따라 설립되는 기업을 지원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지금은 국가마다 ICO에 대한 대응책이 전혀 달라 혼란스럽지만, 언젠가 ICO가 실물자산을 가진 기업이나 단체로까지 확대되면 그때야말로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삼성과 현대차가 증시가 아닌 ICO로 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 대신 삼성코인, 현대차코인을 발급한다고 생각해 보라. 또 지방자치단체 역시 서울코인, 부산코인, 경기코인을 만들어 유치한 자금을 재정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양유창 기자

※(하)편에서는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의 일곱 가지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블록체인 시대의 문제점도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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