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빨리 적응하자”…석박사 대신 `나노학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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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실리콘밸리 르포
이탈리아 출신 엔지니어 살바토레 미트라노 씨는 올해 초 꿈에 그리던 아마존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수년간 스타트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하고 창업도 했지만 더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지난해 개방형 오픈 온라인 코스(MOOC) `유다시티(Udacity)`의 머신러닝 엔지니어 코스를 열심히 수강한 것이 도움이 됐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을 배우기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보다 유다시티 나노학위(Nano degree)를 취득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존도 유다시티 머신러닝 코스에서 고득점을 올린 미트라노 씨의 재능을 높게 평가해 그를 채용했다.
미트라노씨의 스토리는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컴퓨터히스토리뮤지엄에서 열린 유다시티의 연례 콘퍼런스 `인터섹트 2017`에서 실제 소개된 사례다.
인터섹트 2017에서는 유다시티에서 공부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는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약 500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우버 등 무섭게 성장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인재를 찾기 위해 이 콘퍼런스를 찾았다. 소위 온라인 대학의 오프라인 콘퍼런스가 새로운 `잡페어`가 되고 있는 셈이다. 2011년 시작한 유다시티는 지난해 3000만달러(약 344억원) 매출을 기록했으며 기업 가치는 10억달러(1조1475억원)를 넘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을 넘은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학원 대신 온라인 강좌 붐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기술 그리고 세상 변화를 가장 빠르게 실감하는 직업군이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등 신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반면 이 같은 신산업에 필요한 인재는 늘 부족하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5~10년 전, 길면 20년 전에 배웠던 지식과 경험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해 미국에서 기존 직업의 47%가 없어질 수 있다는 조사도 있다. 기술 변화에 따라 언제든 대량 해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6~2015년 사이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미국 노동력 비중은 25.5%에서 21%로 줄었다. 이 사이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2007~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비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다른 일자리와 비교했을 때 55%나 감소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논리가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은 아닌 것이다. 반면 대학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빠르게 대응하는 대학도 이제 막 신기술을 커리큘럼에 적용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반면 기존 일자리에 컴퓨터 코딩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하이브리드 직업`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간 데이터 분석가에 대한 수요는 372% 늘었고, 데이터 시각화 기술에 대한 수요는 무려 2574% 늘었다. 현존하는 직업·일자리가 언제 없어지거나 순식간에 바뀔지 모른다. 의사 변호사 등 고급 직업을 포함해 많은 직업에서 기존 기술은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는 `평생 학습(Life long learning)`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좌초되지 않으려면 `새로 배워야 한다`는 절실함이 작용했다. 20~30년 전에 땄던 대학(대학원) 졸업장의 유효 기간이 끝났다는 것이다. 기존 평생 학습 개념이 졸업장 또는 자격 증명을 늘려서 재취업을 위한 것이거나 자기계발 차원에서 벌어졌다면 새로운 평생 학습 개념은 사라질 직업에 대비하고 새로 만들어질 일자리에서 기회를 찾기 위한 `생존` 차원인 점이 다르다.
직업이 점차 유연해지고 있는 것도 `평생 학습`이 중요해진 이유다. 미국에서도 안정적인 정규직을 선호하지만 산업 변화에 따라 언제든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프리랜서, 1인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 임시직 근로자, 계약직 및 프리랜서 인력의 비율은 2005년 10.1 %에서 2015년에는 15.8%로 늘었다. 2025년까지 2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온라인 강좌 가격이 대학원이나 MBA에 비할 바 없이 저렴한 데 비해 수강 완료 후 우수 대학·기업으로부터 `수강 자격증(크레디트)`도 받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리부트 캠프(Reboot Camp)
회사들도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살아남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현재 직원들이 새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느냐다. 기존 기업들도 직원들에게 `평생 학습`의 기회를 줘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미국 통신회사 AT&T가 대표적 사례다. AT&T는 24만명에 달하는 직원 상당수가 유무선 통신 장비 및 네트워크, 콜센터 등에 종사하는 인력이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술에 의해 `언젠가`는 사라질 직업에 속한다. AT&T는 올해 말까지 유무선 통신 네트워크를 소프트웨어 모델로 전환할 계획이다. 반면 모바일 데이터 폭증 현상과 AI 도입에 대비할 인력은 부족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최소 수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해고하고 또 수만 명을 새로 채용해야 할까? AT&T의 선택은 `리부트 캠프`였다. AT&T는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직원 재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조지아테크,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등 지역 명문 대학과 손잡고 직원 재교육에 나서는가 하면 유다시티, 코세라와 같은 온라인 강좌의 인공지능(머신러닝, 딥러닝)과 디지털 마케팅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학위를 따면 비용을 전액 보조해주는 방식으로 리부트 캠프를 마련했다.
그 결과 지난해 AT&T는 4만명의 신규 인력 중 40%를 내부에서 선발된 인력으로 채웠다. 회사로서는 대량 해고를 막고 직원을 재배치할 수 있었으며 직원들은 같은 회사지만 새로운 일자리와 연봉으로 사실상 `재취업`하게 된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이 같은 `평생 학습` 트렌드와 리부트 캠프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다. 코세라, 유다시티 같은 MOOC 회사들은 이미 비즈니스 모델을 `무료 교육`에서 직원 재교육 또는 평생 학습으로 바꿨다. 미국의 제너럴 어셈블리(General Assembly)는 전 세계적으로 20개 도시에서 재교육을 위한 코딩 및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모임을 만든다. 인력 네트워킹 중심의 소셜미디어 링크트인은 2015년 온라인 교육 비즈니스 업체 린다(Lynda)를 인수해 현재 링크트인 내에서 온라인 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링크트인 러닝`을 가열차게 진행 중이다.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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