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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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터널
박상준 저 / 매일경제신문사 (2016)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임일섭 실장  ilseop@wfri.re.kr

 

저자: 박상준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 일본 국제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교 부교수를 역임했으며, 2008년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교 국제학술원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시아경제, 환율 등을 주요 테마로 한 다수의 학술논문을 저명 학술지에 게재하였으며, 일본 경제에 관한 국문 연구서로는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한국경제에의 시사점』,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시장의 변화와 진출전략』 등이 있다.

리뷰: 장기불황 극복을 위한 효과적 정책대안은 무엇인가 

금융위기 이후 장기정체(secular stagnation)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미약한 세계경제의 회복세와 우리 경제의 저성장 기조 등을 배경으로 하여 일본의 장기불황 원인과 진행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왔다. 관련된 연구들이 다수 발간됨에 따라 일본의 장기불황 관련 논의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느 정도 친숙하다. 자산 버블의 형성과 붕괴, 인구구조의 급속한 고령화의 영향, 디플레이션의 해악과 극복방안 등이 그것이며, 나아가 일본경제의 경험을 우리의 최근 상황에 견주어볼 때의 유사점과 차이점 등에 대한 논의들도 낯설지 않다.

현재 일본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저자의 『불황 터널』은 특히 자산버블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경제에서의 정책대응 방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일본에서 1990년대 초반의 버블 붕괴 이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진행되었던 논쟁을 소개하고 있으며, 2013년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는 ‘아베노믹스’가 십수년 전부터 지속되어 온 학계의 논의와 일본의 정책 실험의 산물임을 밝히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첫째 화살, 즉 현재 진행중인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은 미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과 거의 동일하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미국의 연준이나 버냉키 전 의장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양적완화 정책을 최초로 실시한 것은 2001년의 일본은행이며, 일본은행에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은 1998년 미국 MIT 교수였던 폴 크루그먼이다. 크루그먼은 당시 일본경제의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이 기본적으로 총수요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경제주체들이 디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소비와 투자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본원통화를 공급하겠다는 중앙은행의 믿을만한 약속(credible commitment)을 통해서 디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신뢰성있는 기관인데, 역설적이게도 중앙은행에 대한 이러한 신뢰 때문에 디플레이션 탈출이 어려워진다. 일단 확장적 통화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경제주체들은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중앙은행이 조만간 다시 긴축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에 유동성 공급의 지속성을 신뢰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디플레이션 기대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충분한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이라고 경제주체들이 생각하게 될 정도로 “무책임하게 돈을 풀어야” 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통화정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주목받은 바 있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를 연상시킨다.

당시 크루그먼의 제안은 일본의 정책당국과 학계의 시선을 끌었으며, 2000년초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위원회 심의위원 중 한 명은 “이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결국 2001년 3월 일본은행은 세계 최초로 대규모 양적완화를 시작하였으며, 2006년에 일단 중단되었던 이 실험은 2013년 들어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진행중이다. 2001년 당시 고이즈미 내각의 관방장관으로서 세계 최초의 양적완화 실험을 목격했던 아베는 이후 시간이 흘러 2012년 하반기 수상으로 취임한 이후 ‘아베노믹스’라는 기치 아래 양적완화 정책을 보다 큰 규모로 밀어붙이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은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유발함으로써 수요를 진작하고자 하는 총수요관리정책이며, 이는 경제의 장기불황이 총수요의 부족에 기인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즉 경제주체들이 소비와 투자를 하지 않으니 총수요가 부족하게 되고, 이에 따라 생산이 둔화되어 경기가 침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수요 측면의 문제점보다도 공급 측면의 문제점, 즉 경제의 생산능력의 둔화 때문에 일본경제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는데, 이러한 주장을 대표하는 인물은 2004년의 노벨상 수상자인 에드워드 프레스콧 교수와 당시 도쿄대 교수였던 하야시 후미오이다.

GDP의 증가를 의미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요소의 투입이 증가하거나 생산성이 향상되어야 한다. 프레스콧과 하야시 교수는 고령화에 따른 생산요소(노동력)의 투입 정체, 그리고 좀비기업의 존재와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등에 따른 생산성의 둔화로 인해 일본경제의 생산능력이 향상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불황이 장기화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983-1991년 동안 일본경제의 생산성증가율은 연평균 3.7%였으며 같은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6%에 달했다. 그러나 1991-2000년의 생산성증가율은 연평균 0.3%에 불과했고, 같은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0.5%에 그쳤다. 즉 생산성증가율의 하락이 경제성장률 급락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의 저하는 총수요의 둔화보다는 공급 측면의 생산능력이 둔화된 것에 기인하며, 불황 극복을 위해서는 총수요를 증대시키려는 재정·통화정책이 아니라 경제의 생산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이 관건이다.

이상과 같은 ‘수요 증대론’(경기부양론) vs. ‘공급 증대론’(구조개혁론)의 대립구도에 대해 저자는 각 주장의 근거나 취약점을 설명할 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2013년 이후 진행중인 아베노믹스도 두 시각을 통합하고 있다. 이른바 ‘세 개의 화살’ 중에서 첫째 화살과 둘째 화살은 각각 확장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수요증대론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셋째 화살인 장기성장전략은 기술개발과 차세대 성장산업의 중요성, 여성인력의 경제활동 장려,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구조개혁론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다만 저자는 이 책의 부제인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일본의 불황 탈출 노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2014년의 소비세율 인상으로 인한 일시적 경기후퇴,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인한 엔화 강세 등의 변수들로 인해 일본경제의 불황 탈출이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 압력은 서서히 완화되고 있으며 다만 물가상승과 임금상승의 선순환 구조를 통해 회복세가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2010년대의 한국경제가 몇 가지 점에서 1990년대의 일본경제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즉 인구구조의 급속한 고령화, 성장률의 급속한 둔화와 마이너스의 GDP 갭, 국제적으로 낮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상대적인 장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일본과 비교한 한국의 강점은 기업들의 낮은 부채비율, 심각하지 않은 금융권의 부실채권 부담, 부동산가격의 버블이 거의 없다는 점, 정부재정의 상대적 건전성 등이다. 반면 일본과 비교한 한국의 약점은 유난히 높은 청년실업률, 소득과 부의 불평등,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결합된 낮은 생산성 등이다. 저자는 이러한 진단을 기반으로 우리 경제가 불황터널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정책대안을 평가한다.

한국도 양적완화를 해야 하는가라는 도발적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필요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지금 저물가 기조가 지속되고 있으나 아직 디플레이션은 아니며 유동성함정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양적완화는 필요하지 않다. 또한 원화의 적당한 저평가는 수출경쟁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원화는 엔화와 같은 안전자산이 아니며 우리 경제의 대외순자산과 외환준비금 규모도 일본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화가치와 한국은행에 대한 신뢰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양적완화는 우리 경제가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다만 향후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비하여 통화공급을 충분히 하면서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양적완화와 같은 적극적 통화정책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면, 재정정책은 어떠한가? 저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부채 비율 등을 감안할 때 우리 경제는 재정건전성에 관한 한 세계적인 우등생이며, 따라서 재정지출로 경기를 부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정부부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논쟁하기보다는 어디에, 어떻게 정부의 돈을 써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선심성 정책보다는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체계를 만들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복지지출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물론 재정의 적극적 역할과 관련하여 공기업의 효율적 운영과 공기업의 부채 관리도 중요한 문제임을 잊지 않고 지적한다.

모든 나라들은 고유한 역사적 발전경로와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르며, 따라서 설령 우리경제가 외견상 일본과 유사한 장기불황으로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그 배경이나 해결방안이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적극적인 통화정책의 유효성 여부, 수요증대를 꾀하는 경기부양정책과 공급측면을 중시하는 구조개혁론 사이의 대립 등은 우리 경제에서도 현재적인 쟁점이다. 이 책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 해답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조적 저성장의 위협에 직면한 우리경제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모색함에 있어서 유익한 참고자료임은 분명해 보인다.

기획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작성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임일섭 실장

편집 : 뉴로어소시에이츠

게재일 : 2016.08.29